“히말라야의 벚꽃 설화: 신들의 속삭임이 남긴 비밀”

1. 얼어붙은 산의 고독한 밤

히말라야의 밤은 깊고 차가웠다. 끝없이 솟아오른 봉우리들은 달빛을 삼켜버릴 듯 검게 드리워졌고, 바람은 얼음조차 갈라놓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곳에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독한 산마루에, 이름 없는 신들이 살았다. 그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걸쳐진 존재들이었고, 시간조차 그들을 비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들 사이에 작은 불씨가 튀었다.

“이 산은 너무 적막해.” 늙은 신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바위처럼 굵고 낮았다. “생명이라곤 얼음과 눈뿐이야.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태양을 내려놓을까?” 불의 신이 제안했다. 그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너무 거칠어.” 바람의 여신 아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신들 중 가장 젊었고,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무언가가 필요해요. 인간들이 보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신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아이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꽃을 만들어요. 하늘의 빛으로 꽃잎을 빚고, 땅의 숨결로 뿌리를 내리게 하면 어떨까요?”
늙은 신이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좋아, 해보자.”
그들은 하늘에서 은빛 구름을 걷어내 빛을 모았고, 얼어붙은 땅을 손끝으로 어루만져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벚나무가 태어났다.

 

2. 벚꽃 아이라의 눈물

며칠 뒤, 골짜기에서 기적이 피어났다. 연분홍 꽃잎이 가지마다 망울을 터뜨렸다. 바람에 흔들리며 눈을 녹였고, 신들은 감탄했다. 

"이건...봄이야." 늙은 신이 말했다. "봄의 축복이라고 부르자."

하지만 아이라는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벚꽃 아래 서서 꽃잎 하나를 손끝으로 만졌다. “너무 아름다워요. 하지만 이 꽃은 금방 져버릴 거예요. 인간들이 이걸 보고 슬퍼하면 어쩌죠?”
불의 신이 웃었다. “그게 삶이지. 짧아서 더 강렬해지는 거야.”
“그래도…” 아이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 투명한 방울이 땅에 닿자, 벚꽃은 한층 더 생생한 빛을 띠었다. 붉은 기운이 살짝 섞인 분홍빛, 마치 피처럼 강렬한 색이었다.

그 후로 히말라야의 벚꽃은 다른 곳과 달랐다. 그 꽃잎에는 신의 눈물이 깃들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묘한 슬픔과 따뜻함을 남겼다.

 

3. 바람에 실린 벚꽃의 여정

아이라는 자신의 창조물이 히말라야에만 머물길 원치 않았다. 그녀는 바람을 불렀다.

“친구들아, 이 꽃을 세상 끝까지 전해줘. 인간들이 봄마다 우리를 기억하게 해 줘.” 바람은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벚꽃 씨앗을 날개에 싣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먼저 중국 장강에서 매화와 섞여 새 품종을 낳고, 한국 들판을 물들이며, 일본에서 ‘사쿠라’가 됐다. 그곳에서 무사들은 벚꽃을 보며 짧고 강렬한 삶을 다짐했고,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명예로운 죽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모든 시작은 히말라야였다. 그곳의 야생 벚나무, Prunus cerasoides는 겨울 끝자락에 꽃을 피웠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그 모습은 마치 신들이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듯했다.

 

4. 인간과 벚꽃의 첫 만남

쿨루 계곡에 사는 라니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였다. 부모를 잃고 홀로 살던 그녀는 어느 날 골짜기를 걷다 벚나무 아래에 멈췄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라니는 무릎을 꿇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이게 뭐지? 이렇게 아름다운 건 처음 봐.” 그녀는 손을 뻗어 꽃잎을 잡았다. 그 순간, 이상한 따뜻함이 가슴을 채웠다.

라니는 소원을 빌었다. “내 마을에 평화가 오기를. 이 외로움이 끝나기를.” 놀랍게도 그해, 오랜 가뭄이 끝나고 계곡에 물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은 기뻤고, 라니를 찾아와 말했다. “네가 신들에게 기도를 올린 거지?”
라니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꽃을 봤을 뿐이야.”
그 후로 쿨루 계곡에서는 벚꽃이 피면 축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나무 아래 모여 노래를 부르고, 신들에게 감사를 드렸다. 라니는 그때마다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벚꽃이 단순한 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5. 현대의 흔적과 잊힌 약속

시간이 흘러, 학자들은 벚나무의 기원이 히말라 산맥에 있다고 밝혀냈다. 약 300종의 야생 벚나무가 히말라야에서 자라고, 그중 일부는 11월에서 2월 사이에 꽃을 피운다. 겨울 벚꽃이라 불리는 이 꽃은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장관을 선사한다.

2023년, 한 등산가가 히말라야 트레킹 중 벚꽃 숲을 발견하고 일지에 이렇게 썼다. “눈 덮인 봉우리 아래 분홍빛 꽃이 피어 있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꿈에서 바람의 여신을 만났다. 그녀는 말했다. “이 꽃을 잊지 마. 우리를 기억해.”

그는 깨어나자마자 사진을 찍어 세상에 알렸다. 그 후로 히말라야 벚꽃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 마지막 꽃잎의 속삭임

벚꽃은 떨어진다. 히말라야의 벚꽃도 그렇다. 하지만 그 덧없음 속에 라니가 느꼈던 따뜻함, 아이라의 눈물이 살아 있다. 겨울의 끝자락, 눈 사이에서 빛나는 그 꽃은 삶의 무상함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언젠가 당신도 그 꽃잎을 볼지도 모른다. 그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이 꽃이 당신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지. 어쩌면 그것은 신들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삶은 짧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

벚꽃 아래 서 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눈앞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그 찰나. 혹시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지 않았나요? 히말라야의 벚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잊힌 신들의 손길이 남긴 흔적입니다. 당신이라면 그 꽃잎에 어떤 소원을 빌겠습니까? 그저 고요히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겠습니까? 언젠가 운명이 당신을 그 눈 덮인 산으로 이끈다면, 아이라의 눈물이 스며든 꽃잎 하나를 주워보세요. 그 안에 당신만의 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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