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서해 바닷바람이 거칠게 부는 군산항.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군산세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부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세워진 근대식 세관 건물이었다. 곡창지대였던 호남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가던 출발점. 세관은 이 흐름을 통제하고 감시하던 핵심 기관이었다.
당시는 남성 중심 사회였고,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이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1930년대 중반, 세관 내에 ‘속기, 정리, 보조 행정’을 담당하던 몇몇 여성의 이름이 아주 작게 등장한다. 그들은 주로 일본 이름을 부여받은 조선인 여성들이었고, 대부분 기록의 여백에 머물렀다.
그 중의 한 명, 그녀의 본명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936년자 공문서 한 귀퉁이에, “문서정리보조 1명 – 조선인 여(女), 속기 가능”이라는 메모가 남아 있다. 이 여성은 세관 사무실 한쪽 작은 책상에서, 수입 명세와 통관 자료들을 정리하고 속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아마도 일본어와 한글을 모두 쓸 줄 아는 교육을 받은 여성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존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군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쌀 반출, 세금 징수, 통관 자료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문서로 남겨졌다. 그녀의 필체는 남지 않았지만, 그녀의 역할이 만든 질서는 군산의 근대사 한쪽에서 조용히 쌓여갔다. 전쟁이 격화되며 세관 인력은 줄어들었고, 여성 직원들의 흔적은 점점 사라진다. 광복 후, 이름 없이 떠난 그녀들의 자리는 다시 비어 있었고,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지금, 군산세관은 근대유산으로 복원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붉은 벽돌과 돔 천장을 바라보며, 제국과 무역의 흔적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안쪽, 작은 목재 책상 하나쯤엔 한 사람의 조용한 노동과, 잊힌 여성의 첫 발자국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