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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극단주의 원인 분석: 왜 신의 이름으로 무장하는가?

by redsnow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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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정치, 샤리아, 그리고 구조적 위험성에 대한 고찰

 
 

들어가며

"왜 이슬람권에서만 유독 종교적 명분을 내건 무장단체가 많이 생기는가?"

이 질문은 때때로 선입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슬람을 폭력과 연결 짓는 시선에 대해, 많은 무슬림은 불편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실제로 전 세계 무슬림의 대다수는 평화롭고 관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꾸란도 자비와 공동체를 중시하는 구절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 타 종교보다 '무장 행위'와 자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언론의 편향이나 혐오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종교적 교리에 기반해 명시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
그리고 타 종교의 경우, 동일한 방식으로 종교를 전면에 내세우며 무장 폭력을 조직화하는 예가 드물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극단주의를 낳는다는 편견을 비판하면서도, 왜 유독 이슬람이 정치와 무장 투쟁의 언어로 자주 호출되는지, 그 구조적·신학적 배경을 깊이 있게 고찰하려는 시도이다.


1.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종교다

이슬람은 다른 아브라함계 종교와는 달리, 창시자 무함마드가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적 통치자이자 군사 지휘관이었다. 이슬람 공동체(움마)는 단순한 신앙 공동체가 아닌 정치-법-신앙이 통합된 체제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종교가 단지 개인의 신앙을 넘어서, 국가의 법률과 정통성의 원천이 된다. 이는 이슬람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삶 전체를 포괄하는 규범체계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타 종교와 구조적 차이를 가진다.


2. 샤리아 해석 다양성과 구조적 위험성

샤리아는 흔히 '이슬람 율법'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고정된 법전이 아니다.
그 구성은 다음 네 가지를 바탕으로 한다:

  • 꾸란 (경전)
  •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록)
  • 이즈마 (학자들의 합의)
  • 끼야스 (유추 해석)

이 네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샤리아는 지역, 종파, 시대에 따라 해석 방식이 다르며, 종종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문제에 대해 수니파의 하나피 학파와 한발리 학파는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 구조는 기독교에서 성경 해석을 둘러싸고 종파가 갈라진 것과 매우 유사하다.
가톨릭은 교황과 교리회의 권위를 따르고, 개신교는 '오직 성경' 원칙을 따르며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이처럼 경전은 하나지만,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신학 체계와 실천 방식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슬람에서의 차이점은, 샤리아가 해석에 따라 국가의 법이 되고,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결혼, 이혼, 상속, 형벌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기독교에서 종파 간 차이는 주로 신앙생활이나 예배 방식에서 나타나는 반면, 샤리아는 법적·정치적 현실을 직접 구성한다. 이 점이 바로 샤리아가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에게 자의적 정당화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3. 지하드와 청년 급진화 심리 ― 정의의 이름으로 싸운다는 것

'지하드(Jihad)'는 본래 '노력', '투쟁'이라는 뜻이다.
이슬람에서는 다음 두 가지 지하드 개념이 존재한다:

  • 대지하드: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영적 수련
  • 소지하드: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한 무력 저항

문제는 이 소지하드가 현대에 들어와 정치적 무력투쟁, 심지어 자살테러로까지 해석되면서 발생한다. 정의, 순교, 투쟁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상대적이다. "정의"는 언제나 행동하는 자의 시각에서 정당화된다.

그리고 특히 이 지하드라는 개념은 젊은 세대에게 강한 심리적 흡인력을 가질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 정체성과 소속감: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전사다”라는 자각은, 무기력하고 혼란한 현실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존재의 확신을 준다.
  • 단순한 정의 구도: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며, 나는 선에 속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복잡한 세상에 대한 단순한 해석을 제공한다.
  • 영웅 서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 공동체를 구하는 전사라는 서사적 정체성은 청년들에게 강력한 자극이 된다.
  • 경제·사회적 박탈감 보상: 취업난, 차별,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이념은 유일한 ‘불’을 제공하는 신념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맞물릴 때, '지하드'는 단지 종교적 개념을 넘어 청년 동원과 극단적 이념의 정당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4. 이슬람권 극단주의 발생 이유 ― 왜 반복되는가?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들에도 과거 폭력적 갈등은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세속화, 종교개혁, 정교분리, 인권 중심의 해석 등을 통해 폭력과 신앙을 분리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반면 이슬람은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샤리아가 실제 법률 체계로 존재하며, 종교적 권위가 정치의 정당성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종교 공동체(움마)가 우선되는 인식과 결합되어, 탈국가적 무장단체가 탄생할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형성한다.

또한 이와 같은 이슬람권의 무장행위를 외부 구조의 문제—국경의 불안정, 경제적 궁핍, 외세 간섭—등으로만 설명하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반론에 직면한다:

  •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이슬람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경제 빈곤, 정치 불안, 외세 간섭은 매우 심각하지만, 종교적 명분으로 조직된 무장 극단주의는 드물다.
  • 예: 소말리아나 콩고, 과테말라, 북한, 짐바브웨 등은 혼란스럽지만 종교를 통한 무장조직화는 거의 없다.
  • 반면 이슬람권은 같은 조건 하에서 지하드와 샤리아 해석 구조를 통해 불만을 종교화하고, 무장화할 수 있는 해석 체계를 내장하고 있다.

즉, 사회 불안정은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극단주의를 종교로 정당화하고 조직화하는 것은 이슬람이 가진 구조적 특성과 연계되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5. 구조가 문제다, 교리가 아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본질적 교리 때문이 아니다. 꾸란에는 관용, 자비, 이웃 사랑에 관한 구절이 넘쳐난다.
문제는 구조다.

  • 샤리아는 해석의 유연성이 높고
  • 지하드는 상대적인 정의 개념과 결합될 수 있으며
  •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 정통성을 정의할 수 있는 중앙 권위가 없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될 때, 누구나 종교적 정당성을 자처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구조는, 특히 정치적 실패와 청년층의 절망이 겹칠 때, 무장투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슬람은 신앙뿐 아니라 일상 전반에 깊숙이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무슬림들에게 종교는 타 종교 신자들보다 훨씬 더 밀접하고 중요한 삶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샤리아의 해석은 유연성이 높지만, 이를 정화하거나 자정 할 수 있는 중앙 권위나 제도적 규제가 약하다. 이 구조는 정치·사회적 불만과 결합될 경우, 지하드라는 이름 아래 무장행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맺으며

우리는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위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위험한 것은 그 구조 안에서 책임 없는 해석이 정치화될 수 있는 여지이며, 정의의 이름으로 신의 뜻을 자처하는 자들이 무기를 들 수 있는 조건이다.

종교는 자유다. 하지만 그 자유가 공적 책임, 해석의 균형, 정치로부터의 분리 없이 방치될 때,
어떤 종교든, 신의 이름은 폭력의 깃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