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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민과 함께 늙겠다” – 군산에서 만난 이영춘.

by redsnow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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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늘 보게 되는 이름들,
빵집 이성당, 근대미술관, 초원사진관 같은 익숙한 장소들 사이에서
낯설지만 왠지 눈에 오래 머무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영춘과 그의 가옥.

지금부터 약간은 생소한 이영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위대한 헌신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서울도 아니고, 평양도 아닌 이 조용한 농촌 마을에 한 의학박사가 살았다.
이영춘 박사(1903~1983).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지금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조선 청년.

당시 조선인이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건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학문적 영예를 좇았다면 그는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남았겠지만,
그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진료비를 받지 않고, 환자 집을 찾아가 왕진을 하고,
우물을 파고, 손 씻는 법까지 알려주는 삶.

그가 택한 삶의 무대는 바로 군산의 작은 마을 옥구였다.


병만 고치지 않았다, 삶을 고쳤다

1939년, 이영춘 박사는 옥구농촌진흥원을 설립한다.
그의 철학은 단순했다.

“병만 고쳐서는 안 됩니다. 삶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진료만 하지 않았다.
농민들에게 위생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만들고,
여성들이 빨래하기 쉬운 수도 시설을 설치했다.
농민 의료보험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고,
양호실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국내 첫 양호실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의사이자 교육자였고, 보건 행정가였으며,
시대의 계몽가였다.


그의 삶이 깃든 ‘이영춘 가옥’

오늘날 군산 간호대학교 안에는 그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로 ‘이영춘 가옥’.
원래는 일제강점기 대지주였던 일본인 구마모토의 별장이었으나,
광복 후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지역 의료의 거점이 되었다.

외관은 일본식 주택이지만,
내부에는 서양식 응접실과 우리식 온돌방이 공존한다.
천연 슬레이트 지붕, 자연석 외벽, 나무 바닥, 복도식 구조…
이 모든 것이 섞여 있는 근대 주택의 콜라보다.

이곳은 이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그의 의료기록, 사진, 당시의 일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단순히 ‘집’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철학과 신념이 녹아든 작은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가볍게 둘러보지 말고, 깊이 들어가 보세요

가옥 입구에는 해설사도 상주하고 있다.
신청하면 그의 일대기뿐 아니라,
그 시대의 군산 농촌 사회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좁은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일본 영화 속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한 사람이 한 시대에 남긴 선한 흔적이다.


왜 지금, 이영춘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편리한 병원, 건강보험, 위생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누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혀 없던 시대,
단 한 명의 의사가 마을의 건강과 삶, 그리고 미래를 바꿨다는 건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농촌 의료는 부족하고,
이타적인 헌신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다.

이영춘의 삶은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의사, 어떤 시민,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거울 같은 이야기다.


✅ 여행 정보 요약

  • 장소: 전북 군산시 임피면 이영춘길 11 (군산간호대학교 내)
  • 관람료: 무료
  • 운영시간: 09:00~18:00 (월요일 휴무)
  • 주차: 학교 주차장 이용 가능
  • 추천 팁: 해설사와 함께 관람하면 이해도와 감동이 2배!
  • 주변 여행지: 임피역,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초원사진관, 이성당

군산을 찾는다면, 화려한 근대문화유산 사이에
소박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이영춘 가옥’에도 꼭 발걸음을 들여보시길.
그곳에는 여전히 한 사람의 믿음과 따뜻함이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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