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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풍경] 2. 녹슨 시간의 문을 여는 도시 - 군산

by redsnow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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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는, 그 이름만으로도 바람이 다르게 분다.
군산이 그랬다.

한때는 바다를 품은 부유한 무역 도시였고,
다른 한때는 잃어버린 시간을 숨긴 채 조용히 퇴색한 그림자였다.
지금의 군산은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신을 복원하고 있다.

옛 군산세관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현 군산근대미술관). 출처 군산시


바다를 등진 번영의 기억

군산항에 첫 배가 들어온 건 개항장이 생긴 1899년이었다.
지붕 낮은 창고들과 붉은 벽돌, 일본식 목조건물 사이로
시간은 묵직한 숨을 쉬며 남아 있다.

이 도시는 쌀의 도시였다.
군산항을 통해 조선의 쌀이 일본으로 흘러갔고,
그 대가로 남은 건, 부의 일부와 깊은 상처였다.
지금도 ‘히로쓰 가옥’, ‘조선은행 군산지점’, ‘동국사(우리나라 유일 일본식 사찰)’ 같은 건물들이
말없이 그 시간을 증언한다.

군산은 겉으로는 다정하고 평화롭지만,
속엔 식민지 시기의 아픔이 뿌리처럼 박혀 있다.

히로쓰 가옥과 조선은행 군산지점. 출처 한국관광공사
동국사. 출처 군산시


망각과 복원의 경계에서

한때는 ‘잊힌 도시’였다.
새로운 도로는 군산을 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더 빠르고 큰 도시로 흘러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잊힘이
군산을 하나의 ‘보존된 시간’으로 만들었다.

구도심에 남겨진 오래된 거리,
영화 세트처럼 변하지 않은 간판과 계단들.
그 사이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되었던 초원사진관,
구불구불한 월명동 골목,
그리고 근대역사박물관 앞 잔잔한 바다.

시간을 밀어내지 않고 품은 도시.
그것이 지금의 군산이다.

초원사진관(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과 월명동.


사람의 얼굴을 한 도시

군산을 걷다 보면,
도시는 풍경보다 ‘사람’의 결을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작은 책방을 지키는 주인,
낡은 창고를 개조해 카페를 만든 청년,
오래된 주택에서 삶을 이어가는 노인.

그들은 과거의 유산을 자랑하지 않고,
현재를 묵묵히 이어간다.

시간은 이 도시에서 멈추지 않았고,
그렇다고 성급히 흘러가지도 않는다.
군산은 여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조용히 살아내는 중이다.

경암동 철길마을.


기억은 오래 남는다

군산을 떠날 때, 무엇을 보았는지는 금세 잊었다.
하지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아직 남아 있다.

붉은 벽돌을 스친 오후의 햇살,
차갑고 투명했던 겨울 바다의 냄새,
사람들 얼굴에 스며 있던 긴 시간의 온기.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작게, 그러나 선명하게 남았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고우당과 근대역사박물관.
말랭이마을과 군산대표빵집 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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